인간은 모두 저마다의 모습과 성격, 지능 등을 지닙니다.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모두 제각각인 이유는 한 인간을 구성하는 설계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설계도는 바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정보입니다.
과학이 발달하다 보니 이제는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의 유전정보를 해독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한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 정보 전체를 인간 게놈이라고 부르는데, 유전정보를 해독한다는 것은 이 게놈을 분석한다는 뜻입니다.
게놈에는 두 가지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유전자 목록에 대한 정보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 유전자들이 언제 어떻게 사용돼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유전자 조립 순서에 대한 정보입니다. 이를 학술적으로 ‘유전자 발현 조절 정보’라고 합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도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종(種)인데요. 인간이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하는 특별한 존재로 진화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를 궁구할 때 우리는 대부분 인간에게 어떤 것이 다른 종들과 다르게 추가됐는가를 보려고 합니다. 즉 인간 게놈을 분석할 때 다른 종들과 다르게 추가되거나 더해진 유전자가 있는지 주로 찾게 된다는 말이죠.
그도 그럴 것이 최근의 과학은 서로 다른 종들의 게놈에서 데이터를 수집해 영장류의 DNA를 연구하여 인간 게놈에 무엇이 새로 추가됐는지를 밝히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예컨대 인간에게 언어능력을 가져다 준 게놈 같은 것들이죠.
그렇다면 없어진 게놈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적어도 MIT-하버드 브로드 연구소와 예일대 연구원들에게는 말이죠.
이들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지 <사이언스>에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는데요. 인간 게놈과 다른 영장류의 게놈을 비교해 인간이 그들과 어떻게 다르게 진화했는지 연구했습니다.
브로드 연구소의 제임스 쑤에(James Xue) 박사가 이끄는 게놈 연구팀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인 침팬지와 인간을 구별 짓는 약 10,000개의 유전자 정보를 확인했는데, 대부분은 DNA 염기쌍 몇 개 정도로 크기가 아주 작았습니다. 이 작아진 유전자들은 DNA 염기 배열이 소실된 ‘DNA 결실(缺失)’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침팬지에게는 있는 1만여 개의 유전자가 인간에게는 소실됐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뇌의 발달을 포함한 신경 및 인지 기능에 관련된 유전자들에서 누락된 부분들이 관찰된다는 것인데요. 연구원들은 인간이라는 종 전체에 이런 ‘삭제’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되레 생물학적 측면에서 이점을 준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결과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한 경구와 오버랩 됩니다.
“찰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지만 진짜 쓰임은 바로 그릇의 빈 공간이다.”
움푹한 빈 공간 마저 찰흙으로 채운다면 그것은 흙덩이일 뿐 그룻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연구에 참여한 예일대 의대 스티븐 라일리 교수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우리는 보통 더 진화한 생물학적 기능을 얻기 위해서는 새로운 DNA 덩어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유전자 코드를 덜어내는 것이 오히려 인간을 특별한 종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삭제는 인간을 형성시키는 방법에 대한 통념을 약간 조정하도록 하며, 또한 인간의 더 큰 뇌와 복잡한 인식을 설명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라일리 교수는 유전자 정보 삭제가 어떤 새로운 의미를 가져오는지 우리의 언어를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부존재’라는 어휘에서 ‘부’자가 제거되면 ‘존재’가 되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죠.
연구팀은 실험 대상 사이에 있는 수천 가지 유전적 변화가 가진 기능을 동시에 검사하고 측정했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 개의 DNA 염기서열 활동을 측정하는 강력한 대량처리 기법인 MPRAs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도구들 덕분에 인간을 특별한 종으로 만드는 수많은 미세한 분자 구성 요소들을 식별할 수 있는 것이죠.
이번 연구는 주노미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주노미아(Zoonomia) 프로젝트는 과학자들이 10여년 전부터 포유류의 게놈을 비교 분석해 온 게놈 프로젝트로, 포유류의 진화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고, 인간의 질병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며,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주노미아 프로젝트 결과로 지금 소개한 논문 외에도 10개의 논문이 <사이언스>에 더 발표됐습니다. 전 세계 50여개 기관의 과학자 150여명이 240종의 포유류 게놈을 완전히 해독해 비교 분석한 결과입니다. 이번에 전체 게놈을 알아낸 240종은 포유류 전체의 4%에 해당하지만 상위분류체계인 ‘과’를 기준으로 보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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